권시우 『유닛 이후의 세계』

권시우 「신생공간 이후의 우리에게」

“사진을 찍는 사람은 늘 피사체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초롱 x 표민홍, 《아무것도, 우리의》(2022)


우리에게 공동(共同)이라는 말은 낯설다. 이를테면 국내 미술계 차원에서, 지금 현재의 시공을 함께 전개하고 있다는 생각은 다소 터무니없게 들린다. 애초에 ‘미술계’라는 범주에 딱히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우리는 기금을 포함해, 제도가 마련한 각종 완충재와 제휴하는 과정에서, 간혹 스스로를 미술계 종사자라고 자처하지만, 서류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면, 직업군의 항목은 다시 빈칸으로 남는다. 만약 기금 제도가 일시에 대폭 축소되거나, 말 그대로 없어진다면, 그것과 더 이상 제휴하지 못하는 이들은, 서로를 도대체 무엇이라고 호명해야 될까? 최소한 나는 그에 대한 답변이 주저된다. 어찌됐든 나는 결국 또 다른 빈칸들을 찾아 헤맬 것이므로.


(…) 어느 날 돈선필 작가로부터 메일이 왔다. 벌써 작년의 일이다. 간단한 안부 인사와 함께, 자신의 개인전 《SADER X SABER》(2021)에 초대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메일이 유독 각별하게 느껴졌다. 물론 나의 메일함에는 그런 류의 전시 관련한 메일들이 쌓여 있지만, 그와 별개로 돈선필 작가와 메일을 주고 받은 것은 정말 간만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신생공간 이후, SNS상에서 몇몇 사람들 간에, 해당 시기와 관련된 짧은 논박이 오갔던 적이 있었다. 전시장의 대관료 문제를 포함해, 꽤 다양한 화두가 거론됐는데, 어찌됐든 그것들의 골자는 대략 이러했다. “신생공간 이후에도 잔존해 있는 각기 다른 전시장들을 여전히 신생공간이라고 호명할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아니오, 였다. 왜냐하면 신생공간은 개별적인 단위가 아니라, 한때의 80년대생 미술가들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서로의 작업에 대한 ‘비평적 관객’을 자처함으로써 형성된 공동의 시간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비평적 관객’은 일련의 작업들을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반드시 텍스트로 귀결되지 않는) 비평을 수행했다. 이로써 그 당시의 ‘우리’는 서로의 작업에 관해 자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유사 공론장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우리’라는 범주는 ‘미술계’와 마찬가지로, 다소 모호해졌다. 여전히 일련의 작업들을 능동적으로 소비하는 관객은 존재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공동의 시간에 기여하지 않거나, 못한다. 이를테면 대다수의 전시 경험은 개인 차원에서 누적되는 유의미한 스코어에 그친다. 물론 나는 그러한 경향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나 또한 그러한 스코어를 누적하는 과정에서, 비평으로 추려낼 만한 전시 및 작업들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비평은 더 이상 수행적이지 않다. 즉 능동적인 관객들의 전시 경험은 SNS상에서 각종 이미지와 단문 등으로 활발하게 유통될지언정, 서로 비평 차원에서 공유됨으로써 고유한 쟁점을 발생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누군가들이 그러한 사실을 새삼 상기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신생공간의 여진이다. 이를테면 누군가들은 지금의 전시 경험에 비추어, 한때 자신이 소속됐던 ‘우리’를 떠올릴 수 있다. 다른 한편 신생공간을 경험한 적 없는 누군가들은, ‘우리’와 무관하게 기꺼이 각개에서 자생하는 중이다.


(…) 돈선필 작가의 메일은 마치 먼 과거로부터 수신된 것 같았다. 물론 나는 그와 사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그와 내가 한때의 ‘우리’에 소속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함께 가늠할 수 있는 공동의 시간이 있다.     


SNS상에서 벌어졌던 신생공간과 관련된 짧은 논박 이후, 더 이상의 논의는 (도무지) 성사되지 않았다. 그 당시 제기됐던 일련의 화두들은 더 이상 공동의 문제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각자의 관점에서 발화되는 데 그쳤다. 이제 신생공간의 당사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지하듯 신생공간은 한때의 80년대생 미술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일종의 기폭제로 작용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활동의 노선들 사이에서 갈피를 잃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를 다시 봉합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각자에게 부과된 활동의 노선들을 심화하면서, 마침내 독자적인 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때의 ‘우리’에 소속돼 있던 개인들은 각자의 고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거나, 안타깝게도 그러기를 실패했다.


일전의 글에서도 밝혔듯, 나는 신생공간을 섣불리 회고하고 싶지 않다. 아마 대다수가 그럴 것이다. 그 당시에 의도치 않게 성사됐던 소위 수행적인 비평은, 그 당시의 현재를 활성화하기 위한 동력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그와 관련된 자료들은 대체로 사적인 아카이브에 두서 없이 수장돼 있거나, 도메인이 만료된 각종 웹사이트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우리’에 관한 추상적인 기억 밖에 없다. 그런 식의 기억에만 의존한 회고는 뜬금없는 노스텔지어로 귀결될 뿐이다. 이를테면 신생공간을 경험한 적 없는 누군가들과 함께 ‘우리’에 관한 추상적인 기억을 공유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하다. 다만 그것은 시간의 결렬을 드러낸다. 어느덧 신생공간은 그것에 대한 경험의 유무로 무려 세대를 갈라칠 수 있는 낡은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마침내 기성 세대로 분류된다. 아직까지 가난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각자가 점유하고 있는 고유한 위치는 분명 일종의 권력을 담보한다. 이를테면 나는 어느 지면에든 선뜻 나의 글을 기고할 수 있는 필자가 되었고, 돈선필은 자신의 개인전을 자체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 기타 등등. 《SADER X SABER》는 돈선필이 그간 작업 차원에서 주목했던 피규어에 대한 관심사를 가감없이 드러낸 한편, 무엇보다 전시 공간 곁에 위치한 카페로 ‘우리’를 불러 모았다. 즉 그가 보낸 초대 메일의 수신자들은 대체로 신생공간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했던 당사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가운 마음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을 뿐, 별다른 논의를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곳은 공론을 재개하기 위한 정치적인 거점 따위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활동 중인 한때의 동료들이 은연중에 형성하고 있는 유대감을 재확인하기 위한 자리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한때 모호하다고 상정됐던 ‘미술계’의 윤곽이 점차 드러난다. 즉 ‘우리’는 ‘우리’에 관한 추상적인 기억만으로 서로를 매개할 수 있는 세대 집단으로서, 지금 현재의 ‘미술계’를 형성하고 있다. 설사 신생공간이 독자적인 플랫폼으로 거듭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것이 각자의 발단이었다는 사실만큼은 자명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신생공간 이후에도 기꺼이 서로를 초대하고, 안부를 묻고, 응원하고, 심지어 누군가의 좌절을 뒤늦게나마 염려한다. 그만큼 ‘우리’에 관한 기억은 각별했다. 그와 별개로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결코 모두를 포괄하지 못한다. 물론 누구에게도 모두를 포괄할 의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제도 내외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분이 어디서 유래하는지 새삼 재고해보자. 그것은 바로 공동의 시간이다. 그리고 공동의 시간은 한 개인에 의해 기획된 것이 아니라, 그것에 의도치 않게 연루됐던 모두의 성과였다.


그러나 이는 신생공간을 무려 재연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는 게 아니다. 지금 현재의 시공을 전환할 수 있는 특정한 기회는 반복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코로나 이후 급속하게 고립된 개인들은 서로를 실질적으로 매개할 수 있는 새로운 콜렉티브를 섣불리 형성할 수 없다. 다만 ‘우리’는 공동의 시간을 실제로 경험했고, 그것을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낡은 과거에 대한 노스텔지어가 불필요하고, 모두가 그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은연 중에 형성하고 있는 ‘미술계’로 고립된 개인들을 기꺼이 초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지분을 나누고, 또 나누는 것이다. 그러한 시도는 지금 시점에서 유일하게 공동의 시간을 경험했던 이들이, 마침내 공동의 시간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히 세대적인 차원의 오버랩이 아니라, 엄연한 기성 세대로서 신생공간 이후의 ‘신생’을 수용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로써 신생공간이 아닌, 우리에 관한 논의가 전개된다. 물론 우리에게 공동(共同)이라는 말은 아직까지 낯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기꺼이 미술가라고 호명함으로써, 오로지 제도에게 미술가라는 직업을 허락 받기를 요구하는 관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설사 기금 신청서의 유효 기간이 만료되더라도, 우리가 여전히 ‘미술계’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을 거듭 환기하자. 그렇다. 나는 ‘미술계’에 소속된 일원으로서, 우리와 함께 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빈칸들을 찾아 헤매는 데만 몰두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마침내 우리에 관한 기억을 축적하고, 그것이 더 이상 추상화되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야할 때다. 기억을 매개로 한 연대는 보다 공공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회고할 수 있는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의 시공을 가설하는 일에 가깝다. 그것은 더 이상 터무니없지 않다. 이를테면 ‘신생’은 거듭 갱신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유의미한 작업들은 도처에 산개해 있다. ‘우리’는 과연 그들과 ‘미술계’ 내외에서 어떤 성좌를 형성할 것인가? 나는 다름 아닌 우리에게 자문하고 싶다. 주지하듯 우리가 공동 차원에서 교차할 수 있는 비/물리적인 플랫폼은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기억을 매개로 한 연대를 위해서, 반드시 플랫폼이 필요하지는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가시화의 유무와 별개로, 서로의 작업에 대한 꾸준한 관객이 되는 것이다. 이제 관객의 역할은 수행적인 비평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매개되지 않은 서로를 어떻게 미술가로 호명하고, 주목하고, 무엇보다 각자의 위치를 활용해 일련의 작업들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미술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자.    


나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더 이상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는 단순히 재화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체감하는 중인 정서적인 파산을 암시한다. 그것은 언제나 그랬듯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와 우리를 압도한다. 아직까지 제도는 그러한 상태를 완충할 의사가 없으며, 오히려 그것을 가중시킬 뿐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의 가난을 주시해야한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와 무관하지 않다. 왜냐하면 어찌됐든 함께 ‘미술계’에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술계’의 역학은 재개된다. 카페에 앉아 사람들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고, 그 순간 또 다른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조만간 뵐게요. 권시우 올림.






권시우 Kwon Siwoo 



권시우는 미술 비평가다. 한때 웹진 ‘집단오찬’을 운영하면서, 신생공간의 시기에 전개됐던 각종 활동들에 대한 비평적 피드백을 집필하는 데 주력했다. 현재는 SNS로 대변되는 데이터 환경의 동역학에 의해서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미지라는 단위, 그리고 그것과 일상 차원에서 (재)매개된 사용자 개인의 특정적인 경험을 주요한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