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시우 『유닛 이후의 세계』

총총(권정현)「나의 미술 친구들 – 1화. 참을 수 없이 귀여운 친구들」

나의 미술 친구들 – 1화. 참을 수 없이 귀여운 친구들

총총(권정현)



표준국어대사전에 등록된 ‘귀엽다’의 뜻은 ‘예쁘고 곱거나 또는 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이다. 평평하게 보면 그것은 단지 사랑스러운 대상에 대한 찬사로만 읽힌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때로 귀여운 것은 권력 관계를 내포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귀여워할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와 동등하거나 그보다 우월하고 안전한 지위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길고양이를 귀여워 할 수 있지만, 길고양이는 사람을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누군가를 귀엽다고 말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작업이 ‘귀엽다’는 말은 어떨까? 그것은 칭찬일까 비난일까?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칭찬인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다지 칭찬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냥 할 말이 없어서 대충 하는 말 같기도 하고, 심지어 약간은 가볍고 유치하다는 의미로서 안 좋은 말 같기도 하다. ‘심오한 의미를 가진 미술’보다는 ‘보기 좋은 일러스트’에 가깝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그런 의미로 말할 의도는 없지만, 작업을 ‘귀엽다’라고 말해버리는 순간 의미는 납작해지고 표면의 이미지만 남아버리는 것 같아서 가급적 다른 표현을 찾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결코 ‘귀엽다’는 말을 하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작업들이 있다. 아니, 이렇게 귀여운 것을 어떻게 귀엽다고 하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지? 그런데 이 친구들이 귀엽다고 해서 그게 단지 보기 좋다는 의미는 아닌데···. 귀엽다는 말에 대한 오해를 피해갈 수는 없을까. 이 작업들은 결코 표면의 이미지로서 귀여운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귀여운 것이 사실은 엄청 강력한 것이란 것을, 마치 <슈렉> 속 장화 신은 고양이의 커다란 눈망울처럼, 사실은 고도의 전략이란 것을 이야기해 보자.


(좌) 사박, <핑크 곰>, 캔버스에 아크릴, 45x53 cm, 2021.

(우) 사박, 차혜림, <심신안정 시리즈 – 모여봐요 미술인의 숲>, 플라스틱 화분, 천사 점토, 두부 모래, 스티로폼, 아이스크림 막대, 아크릴 물감, 라텍스 장갑, 연필, 32x60x22cm, 2020.


사박은 미술인 겸 생활인으로 갖게 되는 고민과 감정을 주로 평면 작업으로, 때로 입체 작업으로 표현한다. 그는 그야말로 귀여움의 장인이다. 얼렁뚱땅 그리고 만든 것 같은 작업들에는 묘한 귀여움이 깃든다. <핑크 곰>(2021)의 핑크 곰돌이를 보고, 어떻게 귀엽다는 말을 참을 수 있겠는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 앙증맞은 손과 발, 부드러운 파스텔빛 핑크 털을 가진 곰돌이는 보는 이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작년 2인전에서 차혜림과의 협업으로 제작한 <심신안정 시리즈 – 모여봐요 미술인의 숲>(2020)도 빼놓을 수 없다. 천사점토로 만들어진 작은 친구들은 보자. 모양은 어딘가 엉성하고 부족해 보이는데 색은 알록달록 발랄하기만 하다. 뭐지 이 해맑음은? 너무 귀엽잖아! 그러나 사박의 귀여움은 고도의 위장 전략에 가깝다. 그 의뭉스러운 귀여움은 그 뒤에 감춰진 감정으로서 작업/전시의 주제인 힘들지만 계속해서 미술하는 단단한 마음을 드러낸다. 사박의 귀여움은 곧 그 낙차—미술하는 것의 슬픔과 행복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귀여움이라는 엉뚱한 기표로 나타내는 것이다. 


추미림, <Icy Moon>, 종이 배접 판넬에 아크릴, 100x100cm, 2020.


추미림, <Castle.008>, 종이에 유성펜, 마커, 아크릴 4T, 58x31cm, 2020.


사박의 귀여움이 몽글몽글하게 흐트러진 귀여움이라면, 추미림의 귀여움은 반듯하지만 아기자기한 귀여움이다. 추미림은 도시의 풍경을 추상화하여 기하학적 그래픽으로 나타낸다. 반듯한 직선과 매끄러운 곡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도시 풍경이라면 당연히 차갑고 이성적이어야 할 텐데, 묘하게도 추미림의 기하학적 풍경은 포근하고 부드럽다. 쭉쭉 뻗은 직선 사이사이 틈에 놓인 작고 아기자기한 빌딩 블럭들, 동글동글한 별들, 발이 달려서 총총총 움직이는 친구들이 있어서 추상화된 도시는 따뜻하고 귀엽다. 그러나 귀여움의 절정은 <Castle>(2020) 시리즈에 있다. 아파트를 닮은 네모반듯한 칸칸마다 도시의 작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공부하기 싫어서 연필이 흐물거리던 학창시절,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실려 출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내다보던 한강 다리의 풍경, 반려동물의 발, 하트가 솟아나는 우리집. 이 작은 이야기들이 추억의 마커펜으로 촘촘하게 그려져 있다. 그렇게 추미림의 그림에서 회색빛 도시는 다채로운 빛깔의 이야기를 가진 공간이 된다. 거대한 도시 구조 안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미시적인 삶의 단면들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마음과 함께 전달된다. 곧고 반듯하게 그려진 도시의 풍경을 따뜻한 것으로 전환하는 힘이 귀여움에 있는 것이다.


(좌) 이서윤, <비는 계속해서 많이 왔다>,  acrylic, oil stick, spray and color pencil on canvas, 72.7x60.6cm, 2020.

(우) 이서윤, <캐나다의 만년설은 예술의 역사와 같아>,  acrylic, oil stick, spray and color pencil on canvas, 40x40cm, 2020.


한편 이서윤은 뜬금없는 얼굴로 귀여움을 표현한다. 이서윤은 하나의 맥락으로 이어지지 않는 파편적인 요소들로 구성된 회화를 그린다. 선과 면의 빠른 움직임과 색으로 구성된 화면은 짐짓 장난스러운 선긋기 같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치밀하게 계산되어 구성된 혼란임이 드러난다. 그 혼란스러운 화면 안에는 뜬금없이 귀여운 친구들이 숨어있다. 때로는 좀 멀리서 전체를 보아야 비로소 보이는 표정으로, 때로는 아주 작은 틈을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발견되는 작은 미소로 나타난다. 그렇게 이서윤의 그림은 그림마다 다른 얼굴과 표정을 지니고, 이로써 마음을 가진 것이 된다. 귀여운 얼굴의 회화는 틈틈이 덧붙여진 크고 작은 하트와 함께 작은 마음을 건네는 것만 같다. 그렇게 이서윤은 회화에 얼굴과 표정을 불어넣음으로써 회화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닮게 한다. 여기에서 비인간 사물로서 회화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순간 빛난다.  

세 작가의 작업에서 귀여움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데서 보이듯이, 귀여움에도 다양한 결이 있고 각각 다른 종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표면의 이미지만으로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귀여움의 힘은 그리 쉽게 폄하될 수 없다. 다시 ‘귀엽다’의 사전 정의로 돌아가 보자. ‘예쁘고 곱거나 또는 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 이 친구들이 예쁘고 곱거나 애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모두 온몸으로 사랑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보는 이의 마음까지 몽글몽글 누그러지게 하는 사랑스러움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그 사랑스러움은 때로 숨겨진 속내를 위장하는 전략으로, 때로 미시적이고 작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때로 회화를 살아 움직이는 따뜻한 것으로 만드는 사고의 전환으로 작동한다. 보는 순간 ‘귀여워!(=사랑스러워!)’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참을 수 없이 귀여운 친구들 덕분에 오늘도 미술은 따뜻하다.





총총(권정현) chongchong (Junghyun Kwon)

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들과 협업하여 전시를 하거나 책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믿음의 자본》(서울시립미술관 SeMA벙커, 2021), 《우한나 : 마 모아띠에》(송은아트큐브, 2020), 《팽팽팽 – 탈바가지의 역습》(의외의조합, 2020) 등이 있다. 미술비평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 멤버로 활동하면서 '총총'이란 필명으로 글을 쓴다. 총총이 지향하는 글쓰기와 권정현이 지향하는 글쓰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