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를 만들고 꾸미기
성인용 컬러링북과 스티커북의 유행에 이어서, 요즘에는 ‘다이어리 꾸미기’까지 다시 유행한다고 한다. 문구점을 빼곡하게 채운 형형색색의 스티커와 메모지를 보고 있으면 어릴 적 생각이 나면서 괜히 하나 사고 싶고, 어딘가에 붙여서 꾸미고 싶어진다. 색종이를 접고, 스티커를 붙이고, 조그만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소소하게 만들고 꾸미는 것은 원초적인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는 것 같다.
미술 전시를 보다 보면 가끔 그런 ‘꾸미기’를 떠올리게 하는 작업들을 만난다. 비슷한 도상이 반복해서 등장하거나 무언가 납작하게 눌린 것이 붙어 있는 것 같은 작업들을 보면 작가가 화면을 ‘꾸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지원 <계단에 놓인 것들>, 2020, silkscreen on paper, 106cm x 72cm each. 사진 작가 제공.
최지원 <벽과 면과 선과 그림자>, 2020, silkscreen on paper, 68cm x 56cm each. 사진 작가 제공.
최지원의 평면에는 빨간 해, 초록 산, 파란 물결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하나의 평면에서 등장한 도형이 다음 평면에서 위치를 바꿔 다시 등장한다. 최지원은 작업 이미지의 기본 요소가 되는 단순한 도형 형태의 도상을 실크스크린 틀로 만들고, 종이 위에 그 위치를 바꿔가면서 반복하여 찍는다. 이를테면, <계단에 놓인 것들>은 열두 장의 평면으로 구성되는데, 각 평면에는 다섯 가지 색, 일곱 개의 면, 여섯 세트의 선이 반복하여 등장한다. 마치 동일한 스티커를 이쪽 저쪽에 반복하여 붙인 것처럼, 동일한 형태가 반복하여 등장하며 화면을 구성한다. 명암을 줘서 부피감을 만들지 않은 기하하적 형태로 인해 이미지는 무척 평평하게 보인다. 아주 얇은 한 겹의 스티커를 붙인 것 같다.
유리, <여러 이름의 사과에게>, 2022, oil on wood panel, 72.7 x 72.7 cm. 사진 작가 제공.
유리, <문장이 되지 못한 낱말들>, 2021, oil on canvas, 193.9 x 130.3cm. 사진 작가 제공.
유리의 평면에는 서사가 이어지지 않는 도상의 파편들이 등장한다. 구름, 새, 하트, 사과, 열쇠 같은 도상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등장한다. 각 이미지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대신에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지닌 채로 모여 있을 뿐이다. 하나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을 만들지 않은 채 조각 조각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마치 다이어리의 중간 중간 붙인 스티커나 작게 그려 넣은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그림일기처럼 한 편의 완성된 장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진 않지만 맥락상 적절한 스티커를 붙여서 완성하는 다이어리 꾸미기 같다. 특히 하트와 새 같은 단순한 도상, 그리고 흩날려 쓴 영문 텍스트는 더욱 장식적 성격을 강화하고 그러한 요소가 여러 작업에 반복해서 붙으면서 그의 작업의 고유한 스타일을 부여해 준다. 유리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편지지에 항상 같은 이미지와 글자를 그려 넣어 꾸미는 친구의 편지를 받는 것 같다.
박정혜, <Mellow SUN>, 2018, Acrylic on linen(mounted on wood panel), 162.2 x 130.3cm. 사진 작가 제공.
박정혜, <Sun&SUN>, 2013, Acrylic on linen(mounted on wood panel), 143 x 111cm. 사진 작가 제공.
박정혜의 평면에는 꽃도, 화병도, 책도, 하트도 모두 납작하게 눌려 있다. 마치 책상 밑 유리에 끼워서 납작해진 꽃 이파리처럼 아주 납작하게 화면에 붙어 있다. 박정혜는 명암과 원근법을 사용하여 눈속임을 만드는 회화도, 외부 세계의 무엇도 재현하지 않고 추상에 몰두하는 회화도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으로 구성한 독특한 화면을 만든다. 이를테면 <Sun and SUN>에는 태양과 책, 창문 등이 있는 일상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는데, 어딘가 이상하게 펼쳐져 눌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상의 사물의 특정한 요소를 포착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펼쳐낸 이미지는 때로는 입체를 펼쳐낸 전개도 같기도 하고, 때로는 사물을 밑에 깔고 연필로 윤곽을 뜬 프로타주 같기도 하다. 작가의 고유한 시선으로 인식한 사물의 형태로 구성해낸 세계가 독특하고 아름답다.
총총(권정현) chongchong (Junghyun Kwon)
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들과 협업하여 전시를 하거나 책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믿음의 자본》(서울시립미술관 SeMA벙커, 2021), 《우한나 : 마 모아띠에》(송은아트큐브, 2020), 《팽팽팽 – 탈바가지의 역습》(의외의조합, 2020) 등이 있다. 미술비평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 멤버로 활동하면서 '총총'이란 필명으로 글을 쓴다. 총총이 지향하는 글쓰기와 권정현이 지향하는 글쓰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
회화를 만들고 꾸미기
성인용 컬러링북과 스티커북의 유행에 이어서, 요즘에는 ‘다이어리 꾸미기’까지 다시 유행한다고 한다. 문구점을 빼곡하게 채운 형형색색의 스티커와 메모지를 보고 있으면 어릴 적 생각이 나면서 괜히 하나 사고 싶고, 어딘가에 붙여서 꾸미고 싶어진다. 색종이를 접고, 스티커를 붙이고, 조그만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소소하게 만들고 꾸미는 것은 원초적인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는 것 같다.
미술 전시를 보다 보면 가끔 그런 ‘꾸미기’를 떠올리게 하는 작업들을 만난다. 비슷한 도상이 반복해서 등장하거나 무언가 납작하게 눌린 것이 붙어 있는 것 같은 작업들을 보면 작가가 화면을 ‘꾸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지원 <계단에 놓인 것들>, 2020, silkscreen on paper, 106cm x 72cm each. 사진 작가 제공.
최지원 <벽과 면과 선과 그림자>, 2020, silkscreen on paper, 68cm x 56cm each. 사진 작가 제공.
최지원의 평면에는 빨간 해, 초록 산, 파란 물결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하나의 평면에서 등장한 도형이 다음 평면에서 위치를 바꿔 다시 등장한다. 최지원은 작업 이미지의 기본 요소가 되는 단순한 도형 형태의 도상을 실크스크린 틀로 만들고, 종이 위에 그 위치를 바꿔가면서 반복하여 찍는다. 이를테면, <계단에 놓인 것들>은 열두 장의 평면으로 구성되는데, 각 평면에는 다섯 가지 색, 일곱 개의 면, 여섯 세트의 선이 반복하여 등장한다. 마치 동일한 스티커를 이쪽 저쪽에 반복하여 붙인 것처럼, 동일한 형태가 반복하여 등장하며 화면을 구성한다. 명암을 줘서 부피감을 만들지 않은 기하하적 형태로 인해 이미지는 무척 평평하게 보인다. 아주 얇은 한 겹의 스티커를 붙인 것 같다.
유리, <여러 이름의 사과에게>, 2022, oil on wood panel, 72.7 x 72.7 cm. 사진 작가 제공.
유리, <문장이 되지 못한 낱말들>, 2021, oil on canvas, 193.9 x 130.3cm. 사진 작가 제공.
유리의 평면에는 서사가 이어지지 않는 도상의 파편들이 등장한다. 구름, 새, 하트, 사과, 열쇠 같은 도상이 서로 연결되지 않은 채 등장한다. 각 이미지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대신에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지닌 채로 모여 있을 뿐이다. 하나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을 만들지 않은 채 조각 조각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마치 다이어리의 중간 중간 붙인 스티커나 작게 그려 넣은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그림일기처럼 한 편의 완성된 장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진 않지만 맥락상 적절한 스티커를 붙여서 완성하는 다이어리 꾸미기 같다. 특히 하트와 새 같은 단순한 도상, 그리고 흩날려 쓴 영문 텍스트는 더욱 장식적 성격을 강화하고 그러한 요소가 여러 작업에 반복해서 붙으면서 그의 작업의 고유한 스타일을 부여해 준다. 유리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편지지에 항상 같은 이미지와 글자를 그려 넣어 꾸미는 친구의 편지를 받는 것 같다.
박정혜, <Mellow SUN>, 2018, Acrylic on linen(mounted on wood panel), 162.2 x 130.3cm. 사진 작가 제공.
박정혜, <Sun&SUN>, 2013, Acrylic on linen(mounted on wood panel), 143 x 111cm. 사진 작가 제공.
박정혜의 평면에는 꽃도, 화병도, 책도, 하트도 모두 납작하게 눌려 있다. 마치 책상 밑 유리에 끼워서 납작해진 꽃 이파리처럼 아주 납작하게 화면에 붙어 있다. 박정혜는 명암과 원근법을 사용하여 눈속임을 만드는 회화도, 외부 세계의 무엇도 재현하지 않고 추상에 몰두하는 회화도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으로 구성한 독특한 화면을 만든다. 이를테면 <Sun and SUN>에는 태양과 책, 창문 등이 있는 일상의 풍경을 표현하고 있는데, 어딘가 이상하게 펼쳐져 눌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상의 사물의 특정한 요소를 포착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펼쳐낸 이미지는 때로는 입체를 펼쳐낸 전개도 같기도 하고, 때로는 사물을 밑에 깔고 연필로 윤곽을 뜬 프로타주 같기도 하다. 작가의 고유한 시선으로 인식한 사물의 형태로 구성해낸 세계가 독특하고 아름답다.
총총(권정현) chongchong (Junghyun Kwon)
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들과 협업하여 전시를 하거나 책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믿음의 자본》(서울시립미술관 SeMA벙커, 2021), 《우한나 : 마 모아띠에》(송은아트큐브, 2020), 《팽팽팽 – 탈바가지의 역습》(의외의조합, 2020) 등이 있다. 미술비평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 멤버로 활동하면서 '총총'이란 필명으로 글을 쓴다. 총총이 지향하는 글쓰기와 권정현이 지향하는 글쓰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