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술 친구들 - 5화. 보고 있으면 만지고 싶어지는 친구들
가끔 전시장에 지킴이로 앉아 있으면, 슬쩍 내 눈을 피해 작업을 살짝 만져보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모두 작업을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쩍 내 눈을 피해” 손을 댄다. 알고도! 그런다는 사실이 가장 참을 수 없는 부분이다. 때로 어떤 작업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살짝 스치는 손길에도 쓰러지거나 부서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작업이라도, 모두가 만지면 어떻게 되겠나? “나 하나 만진다고”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만진다면? 그러니 부디 그 욕구를 잠시만 억제하고 교양 있는 시민 답게 행동하자. 만지고 싶은 그 마음을 우리 모두 모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떤 작업들은 시각이 촉각을 환기하여 더욱 만지고 싶어진다. 레진으로 투명하고 반짝이게 만든 표면, 스티로폼을 매끈하게 절단한 표면을 보고 있으면 그 촉감이 어떠할지 직접 만져 보고 싶어진다. 마치 시 문학의 “푸른 종소리” 같은 공감각적 심상의 표현에서 청각이 시각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어떤 미술 작품에서 시각은 그 자체로 촉각을 불러일으킨다. 눈으로만 보고 있어도 표면의 감각이 환기되면서, 그 촉각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일으킨다. 특히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조각은 그 충동을 강화한다. 그러나 그런 재료를 쓴 작품일수록 접촉에 취약한 법, 우리는 교양 있는 시민 답게 충동을 억누르고 눈으로 작품을 본다.
우한나, <Bag with you Stroller>, 2020, 1 of 50 pieces, cotton, fabric, necktie. (사진 이의록, 모델 및 스타일링 박나원, 이미지 작가 제공)
우한나, <Bag with you Stroller>, 《아트 플랜트 아시아 2020: 토끼방향 오브젝트》(덕수궁, 2020.10.23.-11.22.) 전시 전경. (사진 타별, 아트플랜트 아시아&이미지 작가 제공)
조각을 주요 매체로 다양한 설치 작업을 하는 우한나는 특히 천을 작업의 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광택이 있는 천, 몽실몽실 털이 있는 천, 부드러운 벨벳 같은 천 등 다양한 종류의 천이 물감을 대신하여 색과 질감을 만든다. 마치 화가가 어떤 부분에는 과감하고 큰 붓터치로 거친 표면을 표현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세세하게 칠하여 매끈한 표면을 만드는 것처럼 우한나는 다양한 질감의 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붓터치를 대신한다. 그렇게 맨질맨질 또는 부들부들 보이는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그 촉감이 상상되기 때문에 자꾸 만져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솜을 채워서 폭신폭신해 보이는 작업들은 더더욱 만져서 살짝 눌러보고 싶어진다. 마치 인형을 보면 당연히 만져보고 싶은 것처럼. 그러나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이어붙인 작품을 모두가 만지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는 교양 있는 시민 답게 그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 아량 있는 작가는 기어이 관객에게 작품을 내어준다. 우한나의 <Bag with you> 시리즈는 옷이나 장신구처럼 신체에 걸치거나 메거나 들 수 있는 “입는 조각”이다. 패션 아이템의 문법을 차용한 조각은 탈부착 가능한 신체 장기 조각이 되기도 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사코슈 백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Bag with you>는 관조의 대상으로서 작품과 사용의 대상으로서 사물 사이에서 그 미묘한 관계를 저울질 한다.
“입는 조각”을 구상하고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실제로 불특정한 다수의 관객이 입을 수 있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오염되고 손상될 수밖에 없는 작품을 작가는 그 뒤에서 지속적으로 세탁하고 수선하고 관리한다. 물론 작가의 의지와 노력뿐만 아니라 전시장의 여러 스탭의 도움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Bag with you>는 좌대 위에서 시선의 대상으로 남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만지고 들고 두를 수 있었다. 직접 만져본 <Bag with you>는 실로 부드럽고 폭신폭신하고 사랑스러웠다.
황수연, <더 무거운>, 2016/2021.(이미지 작가 제공)
《We're all sick and in love》(WESS, 2021.6.30.-7.25. 기획 장혜정) 전시 전경 (사진 제공: 장혜정, 촬영: 이의록)
다양한 재료로 조각의 형식을 실험하는 황수연은 특히 종이로 만든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로는 사람을 닮은, 때로는 동물을 닮은, 때로는 아무것도 닮지 않은 황수연의 종이 조각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람보다 키가 훌쩍 큰 대형 종이 조각을 보면서, 종이 같은 연약한 재료로 어쩜 저렇게 견고한 형태를 만들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김새와 다르게 실은 그 속이 텅 비어서 아주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을까 같은 상상도 했다.
전시 공간 웨스에서 황수연의 모래 조각을 봤을 때, 조금은 충격을 받았다. 다른 말을 붙일 것 없이, 너무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래를 붙이고 굳혀서 만든 조각은 작은 강아지만 한 크기였고, 생긴 것은 동물은 아닌데 왠지 동물 같은, 어쩌면 포켓몬 같기도 한 그런 모양이었다. 모래 조각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고, 모래 알갱이가 제각각 빛을 반사하면서 빛나고 있었다. 한 알 한 알 빛나고 있었다. 반짝이며 빛나고 있는, 오돌토돌한 모래 알갱이를 살짝 만져 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허나 모래를 쌓고 붙여 만든 조각은 종이만큼이나 단단하지만 연약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단단히 붙인 조각이어도 모래가 조금씩 떨어질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러니 우리는 또 그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 또 다른 아량 있는 작가는 관객에게 모래 조각을 직접 들어서 원하는 곳에 옮겨 놓으라고 했다. 조각을 껴안고 그 무게를 몸으로 느끼며 적절한 자리를 찾아주라고 했다. ‘내가 이 아름다운 것을 정말 만져도 될까?’ 먼저 슬쩍 손으로 표면을 만져 본다. 모래 알갱이는 생각보다 까끌거리며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살며시 옆을 잡고 모래 조각을 들어본다. 앗,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단단한 모래가 당연히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내가 이것을 품에 껴안고 옮기다가는 왠지 사고를 칠 것 같아서 좀 무서웠다. 그리고 모래가 후두둑 떨어지진 않을지 무섭기도 했다. 나는 그냥 그 친구를 그 자리에 놓고, 표면을 여러 번 만져보는 것에 만족했다. 이 아름다운 친구의 감촉이 이렇구나 느끼면서 만족했다. 직접 만져본 <더 무거운>은 까슬까슬 했지만 따듯하고 아름다웠다.
총총(권정현) chongchong (Junghyun Kwon)
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들과 협업하여 전시를 하거나 책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믿음의 자본》(서울시립미술관 SeMA벙커, 2021), 《우한나 : 마 모아띠에》(송은아트큐브, 2020), 《팽팽팽 – 탈바가지의 역습》(의외의조합, 2020) 등이 있다. 미술비평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 멤버로 활동하면서 '총총'이란 필명으로 글을 쓴다. 총총이 지향하는 글쓰기와 권정현이 지향하는 글쓰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
나의 미술 친구들 - 5화. 보고 있으면 만지고 싶어지는 친구들
가끔 전시장에 지킴이로 앉아 있으면, 슬쩍 내 눈을 피해 작업을 살짝 만져보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모두 작업을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쩍 내 눈을 피해” 손을 댄다. 알고도! 그런다는 사실이 가장 참을 수 없는 부분이다. 때로 어떤 작업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살짝 스치는 손길에도 쓰러지거나 부서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작업이라도, 모두가 만지면 어떻게 되겠나? “나 하나 만진다고”라는 생각으로 모두가 만진다면? 그러니 부디 그 욕구를 잠시만 억제하고 교양 있는 시민 답게 행동하자. 만지고 싶은 그 마음을 우리 모두 모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어떤 작업들은 시각이 촉각을 환기하여 더욱 만지고 싶어진다. 레진으로 투명하고 반짝이게 만든 표면, 스티로폼을 매끈하게 절단한 표면을 보고 있으면 그 촉감이 어떠할지 직접 만져 보고 싶어진다. 마치 시 문학의 “푸른 종소리” 같은 공감각적 심상의 표현에서 청각이 시각으로 전환되는 것처럼 어떤 미술 작품에서 시각은 그 자체로 촉각을 불러일으킨다. 눈으로만 보고 있어도 표면의 감각이 환기되면서, 그 촉각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일으킨다. 특히 독특한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어진 아름다운 조각은 그 충동을 강화한다. 그러나 그런 재료를 쓴 작품일수록 접촉에 취약한 법, 우리는 교양 있는 시민 답게 충동을 억누르고 눈으로 작품을 본다.
우한나, <Bag with you Stroller>, 2020, 1 of 50 pieces, cotton, fabric, necktie. (사진 이의록, 모델 및 스타일링 박나원, 이미지 작가 제공)
우한나, <Bag with you Stroller>, 《아트 플랜트 아시아 2020: 토끼방향 오브젝트》(덕수궁, 2020.10.23.-11.22.) 전시 전경. (사진 타별, 아트플랜트 아시아&이미지 작가 제공)
조각을 주요 매체로 다양한 설치 작업을 하는 우한나는 특히 천을 작업의 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광택이 있는 천, 몽실몽실 털이 있는 천, 부드러운 벨벳 같은 천 등 다양한 종류의 천이 물감을 대신하여 색과 질감을 만든다. 마치 화가가 어떤 부분에는 과감하고 큰 붓터치로 거친 표면을 표현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아주 세세하게 칠하여 매끈한 표면을 만드는 것처럼 우한나는 다양한 질감의 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붓터치를 대신한다. 그렇게 맨질맨질 또는 부들부들 보이는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그 촉감이 상상되기 때문에 자꾸 만져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솜을 채워서 폭신폭신해 보이는 작업들은 더더욱 만져서 살짝 눌러보고 싶어진다. 마치 인형을 보면 당연히 만져보고 싶은 것처럼. 그러나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이어붙인 작품을 모두가 만지면 어떻게 되겠나? 우리는 교양 있는 시민 답게 그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 아량 있는 작가는 기어이 관객에게 작품을 내어준다. 우한나의 <Bag with you> 시리즈는 옷이나 장신구처럼 신체에 걸치거나 메거나 들 수 있는 “입는 조각”이다. 패션 아이템의 문법을 차용한 조각은 탈부착 가능한 신체 장기 조각이 되기도 하고 화려하고 세련된 사코슈 백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Bag with you>는 관조의 대상으로서 작품과 사용의 대상으로서 사물 사이에서 그 미묘한 관계를 저울질 한다.
“입는 조각”을 구상하고 만들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실제로 불특정한 다수의 관객이 입을 수 있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오염되고 손상될 수밖에 없는 작품을 작가는 그 뒤에서 지속적으로 세탁하고 수선하고 관리한다. 물론 작가의 의지와 노력뿐만 아니라 전시장의 여러 스탭의 도움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Bag with you>는 좌대 위에서 시선의 대상으로 남지 않고, 우리는 그것을 만지고 들고 두를 수 있었다. 직접 만져본 <Bag with you>는 실로 부드럽고 폭신폭신하고 사랑스러웠다.
황수연, <더 무거운>, 2016/2021.(이미지 작가 제공)
《We're all sick and in love》(WESS, 2021.6.30.-7.25. 기획 장혜정) 전시 전경 (사진 제공: 장혜정, 촬영: 이의록)
다양한 재료로 조각의 형식을 실험하는 황수연은 특히 종이로 만든 조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로는 사람을 닮은, 때로는 동물을 닮은, 때로는 아무것도 닮지 않은 황수연의 종이 조각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람보다 키가 훌쩍 큰 대형 종이 조각을 보면서, 종이 같은 연약한 재료로 어쩜 저렇게 견고한 형태를 만들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김새와 다르게 실은 그 속이 텅 비어서 아주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을까 같은 상상도 했다.
전시 공간 웨스에서 황수연의 모래 조각을 봤을 때, 조금은 충격을 받았다. 다른 말을 붙일 것 없이, 너무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래를 붙이고 굳혀서 만든 조각은 작은 강아지만 한 크기였고, 생긴 것은 동물은 아닌데 왠지 동물 같은, 어쩌면 포켓몬 같기도 한 그런 모양이었다. 모래 조각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고, 모래 알갱이가 제각각 빛을 반사하면서 빛나고 있었다. 한 알 한 알 빛나고 있었다. 반짝이며 빛나고 있는, 오돌토돌한 모래 알갱이를 살짝 만져 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들었다. 허나 모래를 쌓고 붙여 만든 조각은 종이만큼이나 단단하지만 연약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단단히 붙인 조각이어도 모래가 조금씩 떨어질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러니 우리는 또 그 욕구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 또 다른 아량 있는 작가는 관객에게 모래 조각을 직접 들어서 원하는 곳에 옮겨 놓으라고 했다. 조각을 껴안고 그 무게를 몸으로 느끼며 적절한 자리를 찾아주라고 했다. ‘내가 이 아름다운 것을 정말 만져도 될까?’ 먼저 슬쩍 손으로 표면을 만져 본다. 모래 알갱이는 생각보다 까끌거리며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살며시 옆을 잡고 모래 조각을 들어본다. 앗,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단단한 모래가 당연히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내가 이것을 품에 껴안고 옮기다가는 왠지 사고를 칠 것 같아서 좀 무서웠다. 그리고 모래가 후두둑 떨어지진 않을지 무섭기도 했다. 나는 그냥 그 친구를 그 자리에 놓고, 표면을 여러 번 만져보는 것에 만족했다. 이 아름다운 친구의 감촉이 이렇구나 느끼면서 만족했다. 직접 만져본 <더 무거운>은 까슬까슬 했지만 따듯하고 아름다웠다.
총총(권정현) chongchong (Junghyun Kwon)
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들과 협업하여 전시를 하거나 책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믿음의 자본》(서울시립미술관 SeMA벙커, 2021), 《우한나 : 마 모아띠에》(송은아트큐브, 2020), 《팽팽팽 – 탈바가지의 역습》(의외의조합, 2020) 등이 있다. 미술비평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 멤버로 활동하면서 '총총'이란 필명으로 글을 쓴다. 총총이 지향하는 글쓰기와 권정현이 지향하는 글쓰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