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현 『나의 미술 친구들』

총총(권정현)「내가 전시에서 받은 것들 」

내가 전시에서 받은 것들


2012년 여름, 지금은 없어진 플라토 미술관에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전시 《더블》이 열렸다. 대학생이던 나는 현대미술은 거의 모르고, 시간은 많았기에 미술 잡지를 뒤적이면서 화제가 되는 전시에 가 보고는 했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가 누군지도 모르고(이름이 축구선수 같다고 생각했다), 플라토 미술관도 처음이었다. 

벽에는 몇 점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전시장 바닥에 사탕이 펼쳐져 있었다. 단정한 공간에 놓인 작품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둘러보고 이제 막 전시장을 나서려고 할 때쯤, 한쪽에서 누군가가 사탕을 집어드는 것을 보았다. ‘아니! 저걸 가져가는 거야?’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다 포스터를 하나씩 돌돌 말아서 팔에 끼고 있다. ‘아니, 저건 어디서 주는 거지?’ 그제서야 사탕과 포스터를 가져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분명 리플릿을 꼼꼼히 읽었는데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어디에도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은 써 있지 않았다. 그러고도 혹시 몰라, 미술관 직원에게 “사탕을 가져가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가져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서 나는 사탕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물론 포스터도 챙겼다. 

그 전시는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관객이 작품을 가져갈 수 있다니!’ 그 사실을 전혀 모르다가 갑작스럽게, 우연하게 알게 되어서 더 그랬는지, 내게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현대미술은 정말 멋진 것이구나!’ 나는 그 후로 몇 번의 전시에서 무언가를 얻어서 가게 되었다. 


신민 개인전 《No》(공간 가변크기, 2017.12.14.-12.28.)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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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신민 작가의 개인전에 가면 저 작은 점토 조각을 나눠준다는 것을. 신민 개인전 《No》(가변크기, 2017)의 다섯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여성 흉상 조각 삼백 개가 전시되었다. 삼백 명의 여성이 “No”라는 문구가 쓰인 머리띠를 하고서는 눈썹은 잔뜩 찡그린 채 화난 표정을 짓고 있다. 굳게 닫은 입술이 단호하다. 조각의 재료로 쓰인 유토는 따뜻한 곳에서는 쉽게 무르지만, 추운 곳에서는 단단해지는 성질을 가졌다. 사회적 차별에 맞서면서 더 단단해지고 있는 여성들을 닮았다. 

관객은 마음에 드는 조각을 가져갈 수 있고, 삼백 명의 화난 여자는 관객의 손을 거쳐 널리 퍼져나갔다. 각자의 책상 위로, 침대 옆으로, 창문 앞으로 조각은 새로운 자리를 잡았다. 조각은 물리적으로 장소를 이동하는 동시에 SNS 이미지를 통해서 더 멀리 이동했다. 조각을 가져간 관객이 다른 장소에 놓여진 조각의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면서 전시는 더 많은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전시는 물리적으로는 서울 동북부의 작은 전시 공간에서 일어났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장소에서 새로운 관객을 만난 셈이다. 


차시헌, 《영구 보존을 위한 휘핑에 샷 추가》(쇼앤텔, 2020.8.6.-8.21.) 전시 전경.

차시헌, <즉석 화분 종이 컵(185ml)>, 2019, 원마트 야채코너 비닐, 일회용 컵, 빨대, 가변크기.

(사진 출처: https://www.showandtell.kr/5226449884547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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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시헌의 《영구 보존을 위한 휘핑에 샷 추가》(쇼앤텔, 2020)에 들어섰을 때 약간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전시장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비닐하우스. 그 안에는 비닐로 만든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비닐로 식물과 사물의 형태를 만들어 일회용 컵에 붙인 작품인데, 여기에 관객이 빨대를 이용해 바람을 불어 넣으면 완전한 입체가 된다. 공기가 없어 딱 붙은, 2차원에 가까웠던 비닐이 관객에 의해 3차원의 입체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가비지 컬렉션’이라고 말하면서 이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작가가 작품을 나눠주기로 한 이유가 독특한데, 작가가 모든 작품을 보관할 수 없고 일부는 폐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오히려 관객에게 작품을 나눠줌으로써 작품이 ‘영구 보존’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작가 혼자서 작품을 다 보관하려면 들어가는 비용을 관객들에게 조금씩 떼어서 외주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박, <Re-Re-Re의 주머니>, 2020, 종이, 펜, 비닐봉지, 군번줄, 각 15 x 10cm. (사진 제공: 사박, 사진 촬영: 양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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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박의 <Re-Re-Re의 주머니>는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종이에 그린 짤방 이미지 이백 점을 전시한 작품이다. 인터넷을 떠돌며 유행하는 이미지를 작가의 스타일로 비틀어 그려낸 뒤 비닐 주머니 안에 밀봉했다. “공허한 시간을 메우기 위한 것”, “안 되면 되는 거 해라” 같은 문구와 시무룩한 도라에몽, 우울한 심슨 등이 등장하는 이미지에는 젊은 세대의 유머와 냉소가 뒤섞여 있다. 

이백 점의 이미지는 볼체인(군번줄)에 매달려 벽에 걸렸고, 관객은 하나씩 자유롭게 골라 가져갈 수 있었다. 전시 기간이 지날수록 이미지의 숫자는 줄어들었고, 대신 관객의 손에 들려 각자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떠돌던 이미지가 작가의 손에서 현실 공간의 물성을 얻고, 전시장을 넘어 관객에게 넘어가 현실 공간 어딘가로 흩어져 떠돌게 된 것이다. 주인 없는 이미지는 잠시 사박의 작품이 되었다가 다시 주인 없는 이미지가 되었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전시를 보고 시간이 좀더 지난 뒤에 그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 의미를 알자 현대미술이 멋지다는 생각은 배가 되었다. 연인의 상실을 관객이 가져가 점차 사라지는 작품으로 표현하고, 또 그 상실을 다수의 관객과 나눈다는 발상은 감동적이고 탁월했다. 동시대 미술에서 작품을 관객에게 나누는 것은 각기 다른 맥락으로 작동한다. 신민은 사회적 발언으로서 작품의 의미를 강화하고, 차시헌은 작품의 소유와 보관의 문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박은 물성을 갖게 된 온라인의 이미지가 오프라인에서도 온라인과 비슷한 방식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오늘날에도 미술작품은 여전히 유일무이한 것으로서 제 가치를 보존하고는 하지만, 어떤 작품은 익명의 관객 다수에게 자신을 건네줌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널리 보내기도 한다. 






총총(권정현) chongchong (Junghyun Kwon)

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미술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들과 협업하여 전시를 하거나 책을 만들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믿음의 자본》(서울시립미술관 SeMA벙커, 2021), 《우한나 : 마 모아띠에》(송은아트큐브, 2020), 《팽팽팽 – 탈바가지의 역습》(의외의조합, 2020) 등이 있다. 미술비평 콜렉티브 ‘옐로우 펜 클럽' 멤버로 활동하면서 '총총'이란 필명으로 글을 쓴다. 총총이 지향하는 글쓰기와 권정현이 지향하는 글쓰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